정확도가 떨어지는 잡학다식 : The 2nd S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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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

 


머나먼 다리(A Bridge Too Far, 1977)에 대한 몇 가지 개인적인 감상, 그리고 실제 예술을 보는 시선

극영화의 형식을 차용한 다큐멘터리. 재미라기 보다는 공부한단 생각으로 가장 열심히 봤던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솔직히 영화가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왜냐하면, 몇몇 부분은 중간의 작전 진행 상황이 생략되면서, 정작 나처럼 띄엄띄엄 아는 사람은 오히려 더 이해를 못하게 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_-;;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괜찮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당시 연구성과나 그 당시까지 밝혀진 사실을 기초로 만들어진 자료들을 충실하게 고증, 재현했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까지 진행된 연구결과에 비교한다면 당시와 안맞는다고 보이는 부분도 상당수 있겠지만 말이다.

일단, 독일군.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원수나 그의 장군참모였던 블루멘트리트, 그리고 발터 모델 원수의 복장 고증은 상당히 정확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시 마켓 가든 작전을 지휘하고 참여했던 지휘부 및 장교들도 캐릭터를 잘 살렸다는 생각.
(물론 틀린 부분도 많지만, 그건 영어 위키피디어에 잘 나와 있다. 그것을 참조 바람)

실제 작전 얘기를 하자면, 이건 누가 뭐라고 해도 버나드 몬트고머리 원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거다.
이미 팔레즈 포위망에서 서부 전역의 독일군은 이미 궤멸적 타격을 입었던 것인데, 원수 한 사람의 개인적 욕심과 조급성 때문에 말도 안되는 작전을 수립해서 귀중한 인명과 장비만 잃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된 것은 패튼 장군과의 개인적인 갈등 때문이겠지만, 이를 조정하지 못했던 아이젠하워 원수의 우유부단함도 한 몫 거든 것은 사실이니까.

더군다나, 당시 아른헴에 주둔하고 있던 무장친위대는 정말 그야말로 "변변찮은" 병력과 장비를 가지고 영국 제1공수사단을 거의 전멸시키다했을 정도니, 아른헴에서 존 프로스트 중령이 이끌던 영국 1공수 2대대의 영웅적인 전투에도 불구하고 그런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은 애초에 작전 수립이 잘못됐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당시 전투했던 무장친위대는 장비면으로나 편제면으로나 전투단 수준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이 현재 밝혀진 사실이니까. 당시 아른헴에 있던 무장친위대는 호엔슈타우펜(무장친위대 제9기갑사단)과 프룬츠베르크(무장친위대 제10기갑사단)인데, 정작 이 두 부대는 사단으로 편성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단 수준에 불과했으므로.(근데 영화에서는 무장친위대 제2기갑사단인 다스 라이히의 문장으로 보이는 것도 있다. 호엔슈타우펜 문장하고 언뜻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긴 한데, 고증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잘 안 보여서 착각을 일으킨 것인지 헛갈린다. 당시 다스 라이히는 동부전선에 있었다)

물론 1944년 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이 끝났다면, 아마도 그 이후의 세계지도는 확실히 달랐을 것이다. 나치의 베어마흐트를 완전히 철저하게 분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지만, 전후 사정과 적의 내부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이렇게 밀어붙이면 독일군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다가 스스로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일까? 아무리 팔레즈 포위망에서 독일군을 반쯤 죽여놓은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식으로 주먹구구식으로 엉성하게, 그리고 자만심 내지 공명심으로 수립한 그런 식의 작전은 그야말로 무모함에 다름아니었단 생각이다.

하지만 용의주도한 몬트고머리 원수가 자신에게 있어서 일생에 있어서 가장 논란 많은 일을 벌린 이유는, 어쩌면 동부전선에서 쿠르스크 돌출부에 대한 만슈타인 원수의 중부집단군이 동부전선의 마지막 대규모 공세였던 치타델 작전(성채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고, 이후 꾸준하게 밀리면서 급기야는 붉은 군대의 바그라티온 작전에 의해 중부집단군이 전멸하고, 북부집단군이 쿠를란트 반도에 고립되면서 쿠를란트군으로 격하되는 과정에 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켓 가든 작전이 결행되기 직전에 발생한 폴란드 바르샤바 봉기에서 소련군이 보여줬던 모습은 정말 실망스러울 뿐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마도 이런 점도 몬트고머리 원수에게는 시급히 서부 전선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베를린의 나치들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런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그의 조급함을 드러낸 것에 다름아니긴 하지만서도.

이러한 점들은 결국, 몬트고머리 원수가 전적으로 잘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게 한다. 왜냐하면, 원수는 명백히 영국군 최고의 야전사령관(연합군 21집단군 사령관)이었고, 또 연합군 수뇌부의 가장 중요한 일원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원수는 물론 출중한 사람이었지만, 그것이 과대평가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북아프리카에서 롬멜과 대결할 때도, 허울 뿐인 북아프리카 군단을 분쇄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군의 전투 능력도 있겠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막대한 병참, 즉 장비와 물자가 있었기 때문에 북아프리카 군단을 궤멸시킬 수 있었던 것이란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원수는 로마군의 전통을 따랐다. 그야말로 병참으로 이긴다라는 원칙에 충실했던 것이다.

결국, 몬트고머리 원수의 오만과 무모함이 막대한 병력과 장비만을 잃고, 개인 한 사람의 조바심에서 나온 경솔한 행동이 오히려 적에게 승리를 갖다 바친 꼴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 이의가 없을 것 같다. 도대체가, 전투라는 것이 승리 아니면 패배지, 무슨 얼어죽을 90% 승리가 있단 말인가?

전쟁은 놀이가 아니다. 특히나, 이런 대규모 작전이 무슨 병정놀이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전쟁은, 그리고 개별 전투는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피해야 한다. 이길 수 있게 만들거나, 적을 제압할 능력이 충분하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전력을 보존하고, 시간을 벌어서 전력을 보강, 훗날을 기약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충무공의 23전 23승은 바로 그러한 점에서 나온 것임을.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배역 얘기.
볼프강 프라이스는 독일군 장군역에는 최적임자란 생각이 든다. 이 양반은 독일군 군복만 입혀 놓으면 완전 뽀대가 완전 간지나니까(정작 군대는 면제). 그래서인지 매번 폰 룬트슈테트 원수역은 이 배우만 하는 거 같다. 막시밀리안 쉘은 존 보이트가 주연을 했던 오데사에서 처음 봤었는데, 거기서는 비열하고 비굴한 친위대 살인마로 나온다. 이 영화에서도 빌헬름 비트리히 역도 상당히 멋있게 소화해냈다. 이 배우는 눈빛이 완전 작살이라...
영국 배우들이 연기한 영국군 장군들은 워낙 호연이라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특히 로이 어카트 소장역의 숀 코너리는 완전 100%의 완벽 캐스팅이었다. 어카트 소장이나 숀 코너리나 모두 스코틀랜드 출신이니 말이다. 그리고 안토니 홉킨스도 존 프로스트역을 기가 막히게 해냈고...(게다가 이젠 다들 기사 작위를 받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