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도가 떨어지는 잡학다식 : The 2nd S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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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

 


庚申錄 역사

庚申錄
          古 5120-129
          편자미상, 연기미상[1713년(숙종 39) 이후].
          1책(145장), 필사본, 20 x 21.5cm.

1680년(숙종 6)에 일어난 庚申換局의 전말과 이때 피해를 입은 남인들의  伸寃노력에 대하여 南人의 입장에서 기록한 책이다. 편자와 연대는 알 수 없다.  1713년(숙종  39) 7월 22일자 기사까지 실려 있으므로 그 이후에 편찬되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본문 중에 1680년(숙종 6)의 庚申換局 때 賜死된 福昌君 李楨(?∼1680)의  성명을  忌諱하여 "某"라고 쓰고 있으며 경신환국 때 죽음을 당한 柳赫然과 李元禎 등 일부 인사에  대한 복관조치가 이루어진 사실을 말미에 기록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본서는  李楨의  후손인 남인계 인사가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첫머리에는 [庚申鞫廳被罪類]가 실려  있다. "李  處絞"·"許堅 正刑"·"許積 賜死" 등 경신환국 때 처벌당한 남인측  인사의  90인의 성명과 처벌 내역을 적은 것이다. 본문은  크게  [庚申錄]·[己巳錄]·[甲戌錄]과 壬辰年(1712년, 숙종 38) 이후의 기록 등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신록]은  서인세력이 남인들을 몰아내고 국정을 장악한 庚申換局의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1680년 3월 29일에 숙종이 군영 책임자들을 불러 金萬基를 훈련대장으로 삼고  申汝哲을  摠戎使에 임명한 일, 남인들이 역모를 꾸민다는 鄭元老·姜萬鐵 등의 고발, 남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과정, 사건이 일단락된 뒤인 1682년(숙종 8)에 관련자 중 일부를  석방한 기사까지 수록되어 있다. [기사록]은 경신환국 때 피해를 입은 남인계  인사들은  대부분 誣告를 당한 것이므로 이를 伸雪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를 인정한 숙종의 처분에  대한 기록이다. 1689년(숙종 15)에는 己巳換局이 일어나 昭儀 張氏 소생을  元子(景宗)로 봉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이에 반대한 노론세력이 축출되고 남인이 정권을 잡게  되었으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남인들에 대한 伸寃이 가능했던 것이다.  1689년  윤3월  1일 掌令 申 의 상소에서 1693년(숙종 19) 11월 25일 忠州 幼學 李文禎의 상소에  이르기까지의 기사가 실려 있다. 남인측 인사들에 대한 신원 논의와 官爵回復  및  致祭  조치, 경신환국 때 서인의 중심인물인 金錫胄 官爵追奪 등에 대해 수록하였다. [갑술록]은  1694년(숙종 20)에 서인들이 다시 득세한 갑술환국에 대한 기록이다.  남인들이  축출되고 기사환국으로 복관되었던 인사들의 관작이 다시 추탈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壬辰年 이후의 기록은 1712년(숙종 38) 이후에 柳赫然, 李元禎 등  경신환국  때  피해를 입은 남인계 인사들 가운데 일부에 대한 신원조치가 이루어진 일에 대한 것이다.  1712년 5월 18일에 이원정의 손자인 進士 李世瑗의 擊錚에서 이듬해 7월 22일 유혁연과  이원정에 대한 복관조치에 이르기까지의 전말을 기록하였다. 경신환국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정리한 것이며 숙종때 남인의 정치적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다. (강석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