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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

 


桐巢漫錄 역사

   桐巢漫錄<상백古 951.052-N15d> 
          1925년 간행. 南夏正 著.
          附錄 合 3권 2책. 신식활자본. 26.8x17.8cm

     畿湖南人의 입장에서 南夏正(1678∼1751)이 지은 黨論書. 1740년대의 사건들에  대한 서술이 있는 것으로 보아 南夏正이 말년에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규장각에는  桐巢漫錄이 모두 3종 소장되어 있다. 즉 2卷 2冊의 필사본인 <奎4505>(史部  1. 222p.:)과 3卷 2冊의 신식활자본인 <상백古 951.052-N15d> 그리고 목판본인 8卷  4冊의  <가람 古 951-N15h>이 있다.(참고로 <奎4505>은 驪江出版社, <상백古  951.052-N15d>은  旿晟社에서 각각 朝鮮黨爭關係資料集, 黨爭史料集으로 영인된 바가 있다.) 각 판본에는  모두 南夏正의 제자인 朴思正이 1779년(정조 3년)에 지은 跋文이  붙어  있다.  朴思正의 跋文에 따르면 南夏正 歿後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南夏正의 季子  무(楙+土)의  지시로 원래는 先後가 바뀌거나 사건이 중복된 채 3책으로 되어 있던 것을 바로잡아 2권의  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로보아 현재의 판본 중 필사본인 <奎4505>이  이때의  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奎4505>에는 按說이 細註의 형태로  붙어  있는데 그 내용은 소론의 입장에서 본문을 부연설명하거나 비판하는 것이어서 원본  그자체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南夏正의 字는 時伯, 號는 桐巢, 本貫은 宜寧이다. 祖는  大興 郡守를 지낸 重維, 父는 成均生員 壽喬, 外祖는 晉州 姜碩老, 妻父는 泗川  睦昌萬으로 남인 名家의 후손임을 알 수 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1714년에 進士試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단념하여 處士的인 생활을 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썼다. 그의 저술은 {桐巢漫錄} 이외에도 {四代春秋}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7권 4책의 {桐巢遺稿}<古 3428-401>가  남아  있어 그의 사상을 엿볼수 있게 한다. {桐巢遺稿}에는 李瀷, 安鼎福, 黃德吉이  지은  墓碣銘이 附錄으로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기호남인의 정통학맥으로  평가되는  이들이  모두 南夏正을 위해 묘갈명을 쓰고 특히 안정복이 지은 묘갈명에서는  {桐巢漫錄}에  대해서 '痛黨論之錮人心也 不以威  不以愛護 一歸于正'라고 극찬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기호남인들의 정치사에 대한 입장을 대변해주는 책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호남인들의 정치적 입장을 반영한다는 점 뿐아니라  역사인식론에서도  기호남인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가령 3卷 46面에서 西人이 권력을 장악하고  남인이  몰락하게 된 원인을 서술하면서 이는 是非曲直이 아닌 勢利權力으로 설명하는 입장은  李瀷이 역사인식에서 활용하던 '勢'의 개념과 같은 맥락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桐巢漫錄}은 1379년 李成桂가 삼남지방에 침입해 온 倭寇를  무찌르는  과정에서의  逸話로 시작하여 1840년대까지의 사건들이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의 내용은 東西分黨  이후의 사실이 중점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아마도 남하정은 分黨 이후의  사실을  서술하면서 필요한 경우 그 이전 사실들을 추가로 적었던 것을 朴思正이 편집하면서 연대  순으로 재정리하여서 이처럼 통사적인 느낌을 갖는 서술이 된 것으로  보인다.  서술형식은 숙종대 전반기 이전은 주로 다른 사람의 저술을 인용하여 그 출전을 밝힘으로써  가급적 객관적 성격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  부분은  주로 南夏正 자신의 見聞에 의한 직접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내용  가운데는 다른 자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당대 기호남인들의 동향이 생생히  드러나서  일차자료로써의 중요성도 갖는다. 그리고 뒷 시기의 당론서들이 事案마다 제목을  붙이는  것과는 달리 대체로 시기에 따라 隨聞隨錄하는 형태를 보여  당론서의  초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상백古 951.052-N15d>는 다른 판본과는 달리 책머리에  桐巢先生略傳이  붙어 있다. 내용은 대체로 {桐巢遺稿}의 묘갈명들의 내용을  중심으로  南夏正을  간략히 소개한 것이다. 그리고 引用書目에 41종의 책제목이 소개되어 있는 것도  이  판본만이 갖는 특징이다. 마지막에는 朴思正의 跋과 함께 1922년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韓井源의 跋이 추가되어 있다.  내용상으로는 제일 첫 내용인 李成桂의 일화에서  倭寇를  소탕하는 사실에 대해서 '海寇'과 아닌 '寇'를 무찌른 것으로 그리고 그 과정에 대한  서술도 대단히 개략적으로만 소개되었다. 이는 이 판본의  출간연대가  日帝强占期이므로 검열을 피하기 위한 작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글 중반의 임진왜란에 대한  서술은 왜곡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작업은 책의 제일 첫  부분에만  한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卷 1}에서 동서분당 이전의 사실에 대한 기술은 위에서 설명하였듯이  태조의 諡號追上이나 端宗의 廟號 문제 등 그 처리를 놓고 현종 및 숙종  대에  문제되었던 것들이다. 본격적인 黨論은 李浚慶에 대한 서술로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당론서들이 朋黨 이전의 士禍들에 대한 서술로 시작하는 것과는 다르다. 다음으로는  李珥,  成渾 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데 특히 成渾에 대한 비판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己丑獄事에 대해서는 대단히 상세한 서술을 하였는데 이 문제가 남인들이 서인들에  대한 명분을 확보하는데 중요한 문제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이외에도 임진왜란의  처리,  광해군 때의 기사, 인조반정과 그에 따른 논공행상 문제 등이 서술되었다. {卷  2}는  병자호란의 발발 때 전쟁을 피할 수 있었으나 대안이 없는 淸論들로 말미암아 전쟁을  초래하였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후 주로 宋時烈에 대한 비판을  그의  誤禮,  편협한 성품으로 인해 異己者를 극단적으로 배척하는 태도, 내용없는 北伐,  박세당을  사문난적으로 배척하여 죽음을 당하게 한 사건 등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卷 3}은  己巳換局 이후 남하정 당대의 일들을 기술하였다. 남하정은 己巳 이후  當路했던  남인들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許穆에 대해서는 대단히 우호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기호남인들이 門外派, 門內派 및 跨城派로 분열되어 있는 모습, 영조대의 탕평책에  편승하여 吳光運이 시류에 편승한다는 기술 등 다른 자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당시  기호남인들의 동태에 대한 자료를 담고 있다. 다른 판본들과는 달리 원래 본문에  있었어야 할 내용들이 상당량 附錄으로 넘어가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빠지거나  자료가 왜곡된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를 보면 1925년에  출간하면서  문맥상  내용이 잘 맞지 않는 것을 附錄으로 처리함으로써 본문의 내용을 더 잘드러내려는  편집방침에 따른 것이지 의도적인 자료의 왜곡은 아님을 알 수 있다.(연갑수)

 

1740년(영조 16)대 조선 후기의 학자 남하정(南夏正)이 저술한 붕당(朋黨)에 관한 책. 3권 2책. 필사본. 남하정은 벼슬하지 않고 평생 처사적(處士的) 생활을 영위했던 인물이다.

이 책은 갑술환국(甲戌換局) 이후 영조대에 들어와 명분상 수세에 몰린 남인(南人)에게 자신을 유지해갈 수 있는 명분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시에 현실적으로도 현저히 와해되어가고 있는 남인 계열의 실상을 보여줌으로써 그 결속을 강화하자는 의도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1379년(우왕 5) 이성계(李成桂)의 일화(逸話)로부터 영조 전반기인 1740년대까지의 이야기를 시대순으로 적고 있다. 권1에서는 처음에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康氏 : 太祖妃)의 상휘호(上徽號) 복릉침문제(復陵寢問題), 정종의 추상묘호문제(追上廟號問題)와 성종의 폐비윤씨문제 등이 언급되었다. 이 문제들은 조선 전기의 문제이면서 인조반정 이후 집권 사림이 명분으로 들고 나와 사단이 되었던 것이었다.

권2에서는 인조반정과 대청척화(對淸斥和)·주화(主和)의 문제, 북벌문제(北伐問題) 및 복제문제(服制問題) 등이 언급되고 있다. 권3에서는 장희빈(張禧嬪)사건 이후 기사(己巳)·갑술(甲戌)의 정국에 대한, 주로 남인들의 주장을 수록하면서 장희빈 쪽에 섰던 남인 입장의 불가피성을 변호하고 있고 경종·영조대 이후 변동된 정국에서의 주요 남인의 동향을 기술하였다.

끝으로 부록으로 중요 인물에 얽힌 이야기와 그 인물에 대한 평을 적고 있다. 서술의 형식을 보면 숙종대 전반 이전까지의 기사는 주로 타인의 저술에서 인용해 그 출전을 부기(附記)하는 방식을 취했으나, 그 뒷부분에서 주로 남하정 자신의 견문에 의한 직접적 저술을 하였다. 아울러, 기사의 말미에 전거(典據)를 밝힘으로써 붕당에 관한 책으로서의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이 책은 이 시기의 그 어느 붕당론에 관한 책보다 폭 넓은 시기의 광범위한 사실을 다루고 있으며, 붕당론에 관한 한 통사적 체계를 갖춘 최초의 것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이 책은 박사정(朴思正)에 의하여 1779년(정조 3)경에 개편되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桐巢先生遺稿
≪참고문헌≫ 18세기 南人 분열과 畿湖南人學統의 성립(유봉학, 한신대학논문집 1, 1983)